김재규 중정부장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박저희 대통령을 살해하며 10월 26일, 1026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계획하에 살해했다는 계획범죄 주장과,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는 주장이 있다.
1979년 종로구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을 발터PPK 권총으로 살행핸 10.26사건의 주인공이다. 1026사태 발생 전 그가 심경 변화를 겪었을 사건들이다.
- 1979년 8월 11일, YH무역 여공농성 사건
- 10월 4일, 김영삼 의원 제명 파동
- 10월 16일, 부마사태
위에서 그의 심경 변화를 보일만한 사건들이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그의 말이다.
- 내가 거사를 안하면 틀림없이 부마항쟁이 5대도시로 확대돼서 4.19보다 더 큰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 판단
- 이승만을 물러날 줄 알았지만, 박정희는 절대 물러날 성격이 아니라는 판단
- 차지철이 '캄보디아에서 300만을 죽였는데 우리가 200만명을 못 죽이겠느냐.'고 주장
김재규가 밝히는 10월 26일 혁명의 목적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고, 계획적인 혁명'이라고 주장
-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
-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색을 막는 것
-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
-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국익 도모
- 독재국가로서 나쁜 이미지,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
당시 언론에서 보도되지 않았지만,국선변호사의 녹음에 보면
"바깥의 신문에 매일 나오는 보도에 나 자신은 크나큰 충격을 받고 있지만 나에게는 제 4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그 제4의 심판은 하늘의 심판이다.
하늘의 심판에서는 나는 벌써 이겼다
왜냐 그곳에는 진실이 있기때문이다
김재규 사망
- 1979년 12월 18일, 계엄보통군법회의(군사재판)에서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로 사형 선고,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
- 1980년 1월 서울구치소로 이감
- 1980년 1월 28일, 계엄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 확정
- 1980년 5월 24일, 서울구치소(1987년 의왕으로 이전되어 지금의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자리)에서 사형
김재규, 최태민에 대해 발언하다.
- 최같은 자는 백해무익하므로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 없어져야 한다.
- 10.26 사태 발생 3일전 최태민에 대한 보고서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
- 최태민과 박근혜의 부적절한 관계
#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출처 https://goo.gl/DpV5lI https://goo.gl/lo1mh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