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쿠데타 사건 개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계엄령 선포와 관련, 최근 계엄령을 선포한 터키에 대한 나무위키 글이다.
아래 상황과는 다르지만, 2016년 7월에 일어난 일이니 계엄령이 어떤 초법적 권한이 있는지
대통령 하나 잘못 뽑으면 어떤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번 터키 쿠데타도 음모론이 존재한다.
현 터키의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군부와 손잡고 일으켰다는 것
'쿠데타와 관련하여 판검사와 헌법재판관 등 법조인 3,000명을 반란군으로 누명을 씌워서 체포한데서 보듯이 이번 사태를 이용하여 독재체제를 공고히 하려고 하고있다. '
계엄령이란? http://makgori.net/563
이하, 나무위키
1.계엄령 개요
2016년 7월 15일 오후(현지 시각), 터키군의 일부 세력이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 반발하여 일으켰으나, 실패한 쿠데타 시도 사건.
2. 가담 세력
2016년을 기준으로 볼때 뉴스보도를 종합하자면, 제3야전군, 해군, 헌병대와 공군 일부 세력이 쿠데타 에 가담했다고 한다. 사실상 육.해.공 전부에서 쿠데타에 가담했다. 쿠데타의 주모자로 전 공군사령관과 2군 사령관, 3군단 사령관 등 5명의 장군도 체포되었다.
3. 원인과 이에 대한 터키 정부의 주장
2003년 총리에 취임한 이후 14년 째 장기 집권 중인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터키의 주요 언론을 정부가 인수해 폐간시키고, 소셜미디어를 검열해 비난을 받아 왔습니다. 터키 군부가 쿠데타 직후 '시민의 자유'를 유독 강조했던 이유입니다.
터키는 다른 중동 국가와 달리 여성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등 대표적인 세속주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에 반대되는 친 이슬람주의 정책을 펴 왔고, 사법부 등 각 분야의 반대파를 몰아 냈습니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군부 내 세속주의 세력이 궁지에 몰리게 되자, 마지막 남은 자유세력인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분석입니다.
ㅡ 2016년 7월 16일 KBS 뉴스
쿠데타 주요 명분 으로는, 현 정부의 IS 대(對)테러 정책에 대한 반감과 과도한 쿠르드 진압 작전으로 인한 병사 인력 손실에 대한 불만으로 알려졌다. 숱한 터키군 쿠데타가 그렇듯이, 정교일치적 정책을 내세우는 종교주의 정권에 세속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군부의 쿠데타라는 것이다. 터키 당국은 미국이 배후라는 음모론까지 주장하며 귈렌을 넘겨달라고 요구 중이지만, 미국 측은 "증거가 없다면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기사, 테러 배후자로 지목된 페툴라 귈렌도 터키 당국의 주장을 부정했다. #
대통령 에르도안은 세속주의 군인이 아닌 귈렌 주의자가 주도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에르도안은 이번 쿠데타가 "국가의 단합을 원치 않는 군부의 일부가 이슬람 수피즘 성직자인 페툴라 귈렌의 명령을 받아 저지른 것"이라고 말했다.# 비날리 이을드름 터키 총리 또한 " 2016년 터키 군사반란의 배후인물은 펫훌라흐 귈렌과 그 추종자들이라고 추측한다"라 주장했다. 펫훌라흐 귈렌은 에르도안과 한때 동반자관계였으나, 에르도안이 독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인물로, 미국에서 망명 생활중이다.
사실 에르도안이 쿠데타의 배경으로 귈렌을 지목한 배경에는 세속주의자와 귈렌 운동 측 간의 관계가 상당히 나쁘다는 점도 있다. 귈렌 운동이 아직 에르도안의 동맹이던 시절 귈렌 세력 역시 에르게네콘과 발료즈 사건 때 세속주의 군부를 숙청하는 데에 앞장섰었고, 더 나아가 반정부적인 언론인이나 경찰간부 등을 투옥하는 데에도 가담했었기 때문. 2011년 기사 더욱이 일단 '민주적으로' 뽑혔고 선거에서 망하면 어찌할 수가 없는 AKP와 달리 터키 정부의 주장대로 쿠데타 같은 비합법적 방법으로 다른 이슬람주의 세력인 귈렌 운동이 정권을 잡는다면 이를 막을 수도 없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따라서 쿠데타 시도를 귈렌 세력의 시도라고 규정해 버리면 세속주의 야권도 일단은 정부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진행
이하의 시각은 터키 현지시각 기준이며, UTC +03:00 로, 한국 시간보다 여섯 시간 느리다.
7월 15일
시간 |
경과 |
20:56 |
시내에서 총성 들림. |
21:03 |
|
21:42 |
쿠데타군과 경찰 간 충돌 발생. 수도 앙카라에서 탱크, 전투기 등의 움직임 포착. |
21:44 |
쿠데타군, 터키 국영방송 TRT를 장악하고 정부 측에 성명을 발표[1]함. 이후 모든 방송이 중단됨. |
21:53 |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의 모든 항공편 운항이 취소됨. 한국인 환승객 30여명을 비롯한 여객들이 공항에 억류됨. |
시간 |
경과 |
00:53 |
앙카라의 TRT 방송국에서 큰 폭발음 발생. |
01:05 |
에르도안, 페이스타임을 통한 TV 인터뷰에서 "정부를 위해 국민들이 거리에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히며, |
01:27 |
이스탄불 중심부인 탁심 광장에서 에르도안 지지 세력과 쿠데타군의 무력 충돌 발생. |
01:55 |
이스탄불에서, 이슬람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낭송(아잔)이 평소보다 매우 이른 시각[2]에 울려퍼짐. [3] |
02:07 |
에르도안, 터키 서부의 이즈미르에 체류중. 이스탄불이나 앙카라로 돌아오려 했으나 공항 폐쇄로 인해 실패함. |
02:22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터키가 안정을 되찾기를 바란다는 의중을 표시함. |
03:00 |
정부군이 국영방송 TRT를 탈환하여 방송이 재개됨. 터키 노동부 장관과 사무원들이 방송국에 진입. |
03:33 |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에르도안이 도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공항 주변에 지지자들의 행렬 이어짐. |
03:55 |
탁심 광장에서 대치 중이던 군인 30여명이 경찰에 포위되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함. |
04:00 |
군인들이 현지 방송인 CNN Turk의 스튜디오를 점거하고 방송 관계자들을 내보냄. |
04:05 |
터키의 국가정보기관 MIT에서 쿠데타가 진압되었음을 선언함. 쿠데타군 잔당이 아직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임. |
04:30 |
에르도안,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TV 기자회견 진행. "터키군의 폐단을 말끔히 정화(clean up)할 것"이라고 밝힘. |
5. 실패
쿠데타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쿠데타군이 에르도안의 신변 확보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수도 앙카라와 최대도시 이스탄불의 장악에 초점을 맞추느라, 마르마리스(Marmaris)에서 휴가 중이던 에르도안 대통령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쿠데타군은 어떻게 해서든 에르도안의 신변을 확보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결국 에르도안은 쿠데타 직후 바로 비행기에 올라타서 이스탄불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쿠데타군의 에르도안 공격은 에르도안이 휴양지를 떠난 직후에야 이뤄졌다.
역대 수많은 쿠데타 사례들을 보면 쿠데타 성패의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측 지도자의 신변 확보에 있었다. 12.12 쿠데타 당시 반란군은 총리관저를 장악, 대통령 권한대행인 최규하를 사실상 연금시켰다. 5.16 쿠데타의 경우, 군 통수권을 가진 대통령을 확보해 불개입 의사를 받아낸 뒤, 국방장관에 의해 피신한 장면 총리를 육군 참모총장을 통해 확보함으로써 계엄령을 강제로 추인받고 성공시킬 수 있었다. 대통령 신변확보가 좌절되자, 쿠데타 반대 시민항쟁과 정부측의 진압이 이루어졌다. 에르도안은 페이스타임을 통해 몇몇 언론과 차례대로 한 인터뷰에서 시민들에게 맞서 싸울 것을 촉구하면서 동시에 정상적인 지휘계통으로 쿠데타 진압명령을 내렸다. 상술한 대통령 신병확보에 성공했음에도 실패한 쿠데타가 1991년 8월 쿠데타인데 이 경우 보리스 옐친이 연금된 고르바초프를 대신하여 실질적인 지휘계통을 장악하는데 성공했고, 이를 지지하는 수많은 시민들이 가담하여 쿠데타군을 막아냈다.
통신기술의 발달도 실패에 한 몫했다.만약 통신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었다면 에르도안과 정부가 반란에 대한 진압을 시도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SNS를 비롯한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방송국 몇 곳 장악 따위로는 시민들의 귀를 막거나 수뇌부의 정보파악에 혼선을 주는 데 충분하지 않았다.
쿠데타군이 동원한 병력이 한국의 8배나 되는 영토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는 점도 있다. 쿠데타군의 총투입병력은 1천명 미만으로 추정되는데, 이 병력으로 앙카라와 이스탄불의 주요 거점을 모두 확보하려다보니 상당한 무리가 왔고 이를 통해 정부군+경찰의 반격에 저항하지 못했으며 시민들에게 쪽수로 밀려 항복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게다가 쿠데타군은 징집병들이 다수라 쿠데타 지도부와는 달리 쿠데타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동기가 부족했고 이는 사기 저하와 전투력 감소로 이어져 경찰과 시민들이 진압을 시도하자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터키/정치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 군부는 세속주의 지지 성향이 있고, 이 때문에 국가가 일정 수준의 극단주의나 위험 수위에 도달했을 때 조정자 역할을 한다는 시각에 따라 수니파 국가에서 세속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잡을 수 있도록 기여했다는 평가 역시 존재한다. 일리가 있는 주장인 것이, 세속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도시와 이에 반대의 성향을 띄는 농촌으로 양극화된 것이 현재 터키고, 에르도안이 계속된 독재자적인 행보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비교적으로 덜 교육되었고, 세속주의의 영향을 덜 받은 농촌 쪽에서 지지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속주의까지는 몰라도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논리는 위험한 것이, 군부 역시 부패하고, 또한 툭하면 무력으로 정권을 차지하는 행태 자체가 민주주의가 자생할 여건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1980년의 쿠데타만 봐도 기존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배제되고, 합법으로 인정된 3개의 당 중 2개가 군부에서 창설한 것 등을 보면 도저히 민주주의적인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군부의 성향 및 쿠데타 양상은 중동 지역 전반적으로 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며, 이 때문에 대중으로부터 발화된 민주화 운동에서 민주주의 + 이슬람주의라는 신박한 조합이 먹히게 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쿠데타는 본질적으로 옳지 못하며,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이다 .에르도안은 권위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경향이 강하지만, 딱히 나을 것도 없는 군부가 헌정질서까지 파괴하면서 국가전복을 노리는 것과 비교해 본다면 도긴개긴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면이 있다. 그리고 터키인들이 에르도안의 독재에 맘에 안든다고 그들의 쿠테타를 지지하는 건 현 터키 정세를 봤을때 어불성설이다. 에르도안이 독재자이긴 해도 터키 인민이 정식 선거로 뽑은 정통성있는 대통령이다.그러나 이번에 쿠데타를 진압한것은 지지파를 이용한 것이다.즉 진정한 시민의 성숙과는 거리가 멀다.물론 나중에는 일반시민도 참여했지만 지지파로 쿠데타를 막으려 시도한것은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터키 쿠데타가 5시간전 정보당국에 이미 파악됐다는 정보가 나왔다. 터키 군 참모본부가 쿠데타 5시간 전 이미 정보당국(MIT)으로부터 쿠데타 모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으며 이에 참모본부가 터키군에 장비이동 금지명령과 기지 폐쇄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꼬리가 밟힌 쿠데타 세력은 예정보다 급하게 행동에 나섰으며, 쿠데타에 가담한 장성급이 100명이 넘는데도 쿠데타 당일 병력이 크지 않았던 이유로 이 결과로 해석된다.#
6. 쿠데타 이후
265명이 사망하고, 1400명이 부상당했으며, 쿠데타에 가담하여 체포당한 군인은 2839명이다.
쿠데타 실패 이후, 유혈사태에 분노한 시민들이 쿠데타에 가담한 군인들을 폭행하기도 했다.
AKP의 깃발을 든 지지자들이 쿠데타 투항병중 쿠르드인 병사들을 납치 및 살해했다. 이중 한명은 AKP지지자가 인터넷에 참수장면을 중계하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쿠데타군에 맞서싸운 시민들이 찍은 비디오중 인터넷에서는 군인들과 대치하고 말싸움을 하는 여성시민들과 흔히 세속주의적 복장의 상징인 청바지를 입은 시민들이 많이 보였으나 터키 미디어가 공개한 영상들에서는 여성은 비교적 안전한 장소에서 집회를 벌이는 장면만 나오고 나머지 활약상(?)은 전부 전통복장을 하고 수염을 잔뜩기른 남성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영상으로만 도배가됬다. 치졸하다
쿠데타가 종결되었다는 에르도안의 발표 이후, 지지자들이 밤마다 차를 몰고 나와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으며 에르도안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의 충돌도 빈번하게 이어지고 있다. 구호중에는 페툴라 귈렌을 사형시켜라, 샤리아 부활 같은 험악한 구호도 등장하고 있다. 앞으로 1주일동안 이 퍼레이드는 계속될 예정이며, 현재 이스탄불, 앙카라, 콘야, 가지안텝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은 축하의 의미로 시내대중교통을 전면 무료화했다.
2016년 터키 군사반란에 가담한 군인 7명과 민간인 1명이 2016년 7월 16일 오전 12시에 블랙호크를 타고 그리스로 건너가 망명을 신청했다고 한다. 그리스 정부는 일단 이들을 경찰서로 인계하고 망명 승인 여부를 검토중이라고 한다.
이에 메블류트 차뷰 터키 외무장관은 "우리는 그리스 정부에게 가능한 빨리 반역자 8명을 터키로 넘겨줄 것을 요청한다"라고 말했다.# 그리스측에서 이들의 망명을 기각하였다.
프랑스 외교장관이 터키 쿠데타 후속 조치를 악용해서 삼권분립에 대한 훼손에 대해서 강도높게 비난하였다.
휴먼라이츠워치(HRW)가 국가비상사태 이후 경찰의 고문 사례가 다수 확인되었다.
터키 공화국 조폐국에서 기념화폐를 발행했다. 은 재질이며 5000장 한정이다.
6.1. 사후 처리와 대규모 숙청
미셀 루빈에 따르면, 지금 터키인들이 느끼고 있는 공포는 그저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다. 즉 쿠데타 성공, 실패에 관련없이 이후에 터키 정치와 터키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볼수 있다. 정의개발당이 받을 타격은 말할 것도 없고. 에르도안 역시 이번 일로 자신의 제왕적인 군림이 쉽지 않을 것이기에 자신을 위협하는 정적은 철저히 숙청하되 터키인들을 회유할 가능성이 높다.
쿠데타와 관련하여 판검사와 헌법재판관 등 법조인 3,000명을 반란군으로 누명을 씌워서 체포한데서 보듯이 이번 사태를 이용하여 독재체제를 공고히 하려고 하고있다. 터키의 헌법재판소는 아슬아슬하게 에르도안 탄핵안을 통과시킬 뻔했고, 터키의 법조인들도 상식적인 판결을 내려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에르도안에게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터키에선 1984년 이후로 사형이 한번도 시행된적이 없는데 (2004년 공식적 폐지) 이번 쿠데타를 계기로 사형제를 부활해 쿠데타 주동자들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전국의 국공립 및 사립대학 학장 전원인 1,577명에게 반란에 연루되어있다는 누명을 씌워 사직서를 쓰라고 통보했다. 동시에 교육부 소속 15,200명, 내무부 8,777명, 총리실 257명 등 25,000명의 공무원도 반란 연루 누명을 씌워 해고했다. TV와 라디오 방송국 24곳도 반란 연계 누명을 씌워 방송 허가가 취소됐다.# 군부와 법조계에 이어 세속적인 교육계와 언론계, 공무원 조직도 숙청함으로써 절대적 칼리프가 지배하는 이슬람 신정국가로 한 발 더 다가갔다. 대통령 위에 종교 지도자가 군림하고 있는 이란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20일,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군사 쿠데타 세력의 위협제거를 위해 근 3개월간 실시된다고 한다. #
위키리크스는 집권당 AKP가 주고받은 전자우편을 대거 공개했다. https://wikileaks.org/akp-emails 에서 볼수 있다.
디시에 관련 글이 힛갤에 올라왔다.
친정부 시위 참가 여성들 중 유독 히잡을 착용한 여성들이 많이 보이는편. 히잡을 꺼리는 터키 여성들은 에르도안 집권 이후 히잡 선호 현상이 터키를 강타하고 있는 시점에 이번 쿠데타가 히잡 착용 의무화를 부채질 하는거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디시 등지에서도 이런 현상과 관련된 드립들이 올라오고 있는 중.[7]
밀고자는 소령으로, 쿠데타 당시 정보당국으로 찾아가 수장을 납치하는 임무를 맡아야 했지만 그냥 수장을 찾아가 쿠데타를 밀고했다.. 그래서 쿠데타가 예정보다 6시간 빨리 진행된 것. #
에르도안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해서 서방세력이 간섭할시 친러시아로 갈수있다고 신 밀월 관계를 형성하고있다 # , #
이 쿠데타의 영향으로 터키도 이 사진의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이슬람 원리주의가 득세하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7. 음모론
일각에서는 쿠데타가 현 터키의 이슬람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군 조직과 정부세력의 음모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종의 친위쿠데타가 아니냐는 것.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의 담화 내용중 사형제 부활, 군개혁(을 빙자한 숙청), 국가원수 권력 강화라든가 쿠데타가 실패한 이후 가담자만 대략 6천명이나 긴급구속 시키는등#BBC 영문 그러나 에르도안 본인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자작극 주장을 부정했다.